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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CTS
작성일시 : 2011-03-16
조회 :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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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과 선언문’하면 민족대표 33인을 쉽게 떠올리게 되는데요.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일본 군사들을 피해 사진을 촬영하고, 영자 신문에 기사를 실었던 외국인이 있습니다. 서른 네 번째 민족대표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를 최기영 기자가 소개합니다. --------------------------------------------------------------------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이곳에는 1919년 일본 군경에 의해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던 23명의 주민들이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잊힐 뻔 했던 제암리학살사건의 참담했던 현장은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으로 달려간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에 의해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1916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한국에 온 그는 독립운동이 펼쳐지는 현장을 사진과 기사로 영자신문에 발표하며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전했습니다. 유진 회장 / 호랑이 스코필드 기념사업회 스코필드 박사의 박애정신을 알리고 계승하기 위해 2009년 창립된 호랑이 스코필드 기념사업회 회원들은 지난 12일 제암리 3ㆍ1운동 순국기념관을 방문했습니다. 민족저항운동의 흔적과 제암리학살사건의 역사를 관람하며 참가자들은 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보여 준 스코필드 박사의 정신을 기렸습니다. 유진 회장 / 호랑이 스코필드 기념사업회 독립 운동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일본에 의해 추방된 그는 1958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장학과 구제사업에도 헌신했습니다. 호랑이 호(虎) 도울 필(弼). 호랑이 정신을 품은 한국인을 돕겠다며 ‘석호필’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불리길 원했던 스코필드 박사. 민족의 독립을 주도했던 민족대표 33인과 함께 서른 네 번째 민족대표로 독립을 이끈 그의 정신이 시대를 뛰어넘어 이어지고 있습니다. CTS 최기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