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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CTS
작성일시 : 2010-06-09
조회 :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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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0주년이 되는 햅니다. 동족상잔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국사회는 공산주의와 군사정권 등 역사적 소용돌이를 지나야 했는데요. 기독언론들은 역사적 시기마다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마련한 CTS뉴스기획, 오늘은 기독언론 이야기를 정희진 기자가 전합니다. --------------------------------------------------------------------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민족 최대 비극, 한국전쟁이 발발합니다. 피해는 교회에서 가장 심해 짧은 점령기간 동안 일제 때 희생된 기독교인 수보다 더 많은 교인들이 납북되거나 처형됐습니다. 북한 공산당에게도 최소한의 동포애가 남아 있을 거란 희망은 목회자 고문과 총살이 이어지며 무참히 짓밟힙니다. 당시 기독언론도 전쟁의 포화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해방 이듬해인 46년 조선남부기독교대회 기관지로 창간된 ‘기독공보’는 50년 한국전쟁 발발과 동시에 휴간됩니다. 51년 부산에서 4인 동인지로 복간된 후 기독공보는 교계의 반공활동을 보도하는 데 힘썼습니다. INT 김암 장로 / 1948 - 64년 기독공보 근무 INT 김명구 교수 /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상임연구원 60년대에 시작된 군사독재 이후 기독교는 어떤 종교보다 더 한국현대사와 큰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군사정권의 폐해가 극심했던 5공 유신말기, 기독언론은 민주화 운동 관련 기사를 일반 언론보다 더 과감하게 싣습니다. 크리스챤신문은 안기부에 끌려가 심한 고문을 당한 이태복 사건을 두고 NCCK의 강한 비판을 그대로 보도하며 지방 배포를 금지 당하기도 합니다. INT 정지강 목사 / 1978 - 83년 크리스챤신문 근무 이 밖에도 기독신보, 복음신문, 극동방송 등 기독언론들은 산업선교와 인권, 반공 등의 활동을 이어오면서 반공주의와 민주주의 전후 한국사회를 지배한 두 이데올로기를 둘러싸고 많은 공과를 남긴 게 사실입니다. 근대화 60년의 역사 속에 기독언론은 신앙적 예언자이자 선각자로서 역할을 감당해왔습니다. CTS 정희진입니다. DVE 6월 특집, 기독교 유산 // 기독언론, 시대의 예언자 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 왼쪽 하단 장소자막으로... 공산당에 목회자와 성도 박해 <기독공보> 한국전쟁으로 폐간 51년 복간 후 반공활동 보도 힘써 INT 김암 장로 / 1948 - 64년 기독공보 근무 INT 김명구 교수 /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상임연구원 일반언론보다 민주운동 활발히 보도 <크리스챤신문> 지방 배포금지 탄압 INT 정지강 목사 / 1978 - 83년 크리스챤신문 근무 영상취재 강권수 전상민 |